k 와 친구로 지낸지 거의 십 년이 다 되어 가는데 둘이 여행을 가 본 적이 없다는 사실을 최근에 깨달았다 섣불리 해외 여행을 갔다가 첫 여행에 대판 싸우고 절교 해버리면 어쩌냐며 국내 여행을 다녀오기로 했다 나는 바다가 무척 보고 싶었고 k 는 해물을 먹고 싶어했기 때문에 최근에 둘 다 재밌게 봤던 동백꽃 촬영지인 포항으로 여행을 가기로 했다

 

둘 다 전날에 얼마 못 자고 온 데다 버스 출발을 30초 정도 남겨두고 겨우 탔어서 가는 동안에는 내내 잠을 잤다 완전히 못 눕고 발을 아래 쪽으로 두고 자서 자고 일어나니 둘 다 발이 퉁퉁 부어있었다

 

고속버스 터미널에서부터 시내버스를 타고 또 한참을 가다 보면 구룡포가 나온다 구룡포는 해수욕장이 아니라 항구라서 시장 앞 버스 정류장에서 내리면 바로 바다를 볼 수 있다 배가 잔뜩 서 있고 말도 안되게 푸른 바다가 보인다 날이 추웠는데 싫지 않고 시원했다 숨이 탁 트였다

 

k 는 시키지도 않은 맛집을 신나서 찾아왔는데 그 중에 하나가 손칼국수 집이었다 한 그릇에 삼 천 원 밖에 안 하면서 양이 말도 안되게 많았다 연세가 꽤 있으신 할머니 한 분이 운영하고 계셨는데 둘이 배가 터지도록 먹었다 밥을 먹고서 한 번은 보고 가자 싶어서 까멜리아를 찾아갔는데 이 날씨에도 줄이 엄청 엄청 길었음 ... 다들 앞에서 사진 찍으려고 난리였다 계속 기다리려니 너무 춥고 다리 아파서 진경이 사진만 금방 찍어주고 바로 숙소로 갔다

 

이번 여행에서 제일 좋았던 건 단연 숙소였다 방 안에 누워있으면 등대랑 바다랑 하늘이 다 보였다 그리고 우리 방에서 독립적으로 쓸 수 있는 테라스가 있어서 담배도 잔뜩 필 수 있었다 덕분에 둘이 계속 뒹굴 거리다가 담배 피고 밥 먹고 담배 피고 그렇게 시간을 보냈다 테라스에서 일출을 진짜 보고 싶었는데 안개가 너무 짙어서 그건 못 봤다 아침 공기가 무진장 추웠던 것만 기억난다

 

날씨도 춥긴 했는데 얼어 죽을 정도는 아니었고 돌아다니기에도 괜찮았다 돌아갈 때는 익수씨가 시장까지 데려다 줘서 편했다 시장에서 버스를 타고 터미널로 돌아가기 전에 육회와 과메기를 먹었는데 과메기는 잔뼈가 많아서 번거로웠고 육회는 다시 먹고 싶은 맛이었다 삼삼하고 시원하고 아삭아삭했다

 

서울 고터로 돌아와서 배고프고 힘들다고 쌀국수를 먹고 헤어졌다 결과적으로 바다 다녀왔는데 해산물은 한 끼만 먹고 다른 걸 더 많이 먹었다 돌이켜보니 아쉽다 다음에 해물에 좀 더 익숙해지면 바다 여행을 다시 가자고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