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 앞 마트에서 나흘 째 자두를 팔고 있었다. 입구에만 들어가도 자두의 달큰한 향이 코를 찔렀다. 삼 일 동안 냄새만 맡다가 오늘은 바구니에 자두를 담았다. 여섯 개는 잔뜩 익고 네 개는 덜 익은 걸로, 딱 열 개. 


자두를 먹지 않고 두는 상상을 한다. 검은색 비닐봉투에 담긴 자두들이 냉장고 안에서 그대로 썩어가는 상상. 벌레가 잔뜩 꼬일 때쯤 꺼내져 음식물 쓰레기 봉투로 옮겨 가는, 건물 밖에 내다 놓아지면 결국에는 굴러다니다가 길고양이에게 난도질 당하는 그런 상상.


최악을 상상하는 것은 언제나 쉬운 일이다. 그럴 필요 없을 때에도 나는 습관적으로 최악의 상황을 상상한다. 말하자면 낙법을 치기 전에 떨어질 곳을 예상하고 매트리스를 깔아 놓는 것과 같은 일이다. 다치지 않을 지도 몰라, 그렇지만 다치는 건 싫고 아프니까. 최악을 미리 상상해두면 차악의 상황이 일어나도 죽을 만큼 슬프지는 않을 것 같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때에는 죽을 것 같았다. 상상도 못했던 일이 일어나곤 했다. 울기만 할 때도 있었다. 그래도 상관 없었다. 그건 그냥 나를 보호하기 위한 액션이었다.


나를 사랑했다는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는 순간이 최악이 될 거라곤 상상 못했어. 공기가 눅눅하고 운동장이 너무 조용해서, 담배를 너무 피워대서, 쓸모 없어진 우산 때문에 가방이 무거워서, 집에 오는 길에 같은 노래만 들어서, 그런 거 말고. 네가 나를 사랑했기 때문에 나는 오늘 최악이었다. 그런 건 상상도 하지 못했기 때문에 나는 나를 보호하지 못했다. 덕분에 오늘 나는 죽을 만큼 슬퍼야만 한다. 내 모든 소중한 건 나 때문에 최악이 되는 것일까. 나는 어째서 나한테 또 최악을 주는 것일까. 내 삶은 미안한 줄도 모르고 자꾸 최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