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란 얼마나 오만한가? 시야는 얼마나 좁고 편협하며 그 생각은 또 얼마나 자기중심적인가? 왜 인간은 이기적인가? 왜 나의 불행은 남을 원망하는 마음으로 이어지는가? 남을 원망하는 마음은 어째서 또다시 나를 원망하는 마음이 되는가?


인간을 인간 답게 하는 것들이 고독, 후회, 시기, 질투, 그런 불완전한 요소들이라는 사실이 싫었다. 인간이기 때문에 누구나 그렇듯이 나 또한 완전할 수 없다는 사실이 억울했다. 그 불완전함을 받아들이는 것이 내 과제라는 것도 화가 났다. 나는 내가 가진 모든 것들이 나에게 완벽한 것들이길 바랐고 온전히 제어가 가능한 나의 것이길 바랐다. 알다시피 진정한 의미에서 그런 행운을 누리는 자는 존재하지 않고 어느 누구도 가지지 못했듯 나도 가지지 못했을 뿐이지만 글자를 읽고 이해하는 것과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또 다른 문제이다. 나는 언제나 내가 불완전하며 불행하다고 느꼈고 나만이 가지지 못한 것이라 여겼다. 나는 광적으로 모든 결함의 원인을 찾으려 했고, 그것은 남을 원망하거나 나를 원망하는 것으로 이어졌다. 


원망하려고 마음을 먹으면 세상의 어떤 사람도 원망할 수 있었다. 나보다 잘났기 때문에, 나를 괴롭혔기 때문에, 내 자존심을 건드렸기 때문에, 나한테 무책임하게 잘해줬기 때문에, 나를 너무 알았기 때문에, 나한테 다가왔기 때문에. 세상의 모든 것은 미워하기에 너무 쉬웠다. 그렇기에 나는 나도 원망해야 마땅했다. 너보다 못났기 때문에, 너한테 당했기 때문에, 자존심만 부렸기 때문에, 너와 친해졌기 때문에, 너에게 너무 많은 걸 말했기 때문에, 너를 사랑하기 때문에. 나보다 원망하기 쉬운 사람은 없었다. 그래서 언제나 누군가를 원망하게 되면 그만큼 나를 싫어하게 되었다. 나는 그러한 일종의 자기혐오를 건전한 자기반성으로 착각하면서 수 년 동안 원망하는 법을 배웠다. 


원망할 가치도 없었다면 나는 그냥 그들을 어느 날 만났던 어떤 사람으로 기억하고 말았을 테다. 그렇지만 나는 원망하고 싶었고 그래서 면면이 들여다보고 관찰하고 외웠지. 함께 했던 시간들을 몇 번이나 정리해서 들여다 보기 쉽게 해두었다. 덕분에 어느 행복했던 여름 날 울창한 나무 밑에서의 기억도, 몇 달이나 서운했던 바닷가에서의 밤도, 습관 같던 말투도, 전부 떠올리고 싶지 않아도 지겹도록 떠오르고 떠올라서 억지로 수십 번을 되새김질하게 만든다. 그래서 결국에는 또 다시 원망하면서 살아간다. 나를 떠난 사람도, 나에게 있는 사람도. 


나한테 원망은 고백이다. '나는 사실 너에게 이만큼이나 자리를 내주었어', 고백하고 싶은 마음을 '왜 너는 나한테 그러지 못했어?' 로 말해버리고는 후회하는 것. 사랑한다고 말하고 싶은 마음을 틀어 막으면서 몰래 절망하는 것. 너를 사랑해, 그래서 너를 미워해. 나한테 원망의 다른 말은 사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