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되니 기온은 그대로여도 공기가 다르다 산보의 계절이 왔다

시가 제일 좋은 이유를 꼽으라면 첫 번에 모든 게 읽히지 않는다는 점이렸다 다시 읽을 때마다 좋아하는 시 편이 하나씩 늘어난다

 

오랜만에 d와 만나서 고기를 먹고 한참 얘기를 나눴다 일을 시작한 이후로 꽤나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것 같아 걱정이 되는 동시에 여전히 선하고 우직한 모습 그대로 하나도 변하지 않은 그가 반갑기도 했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래러의 결혼식이 다가오고 우리는 대구로 간다

직원도 친절하고 디저트도 맛있고 인테리어도 아름답던 모노릭 단 하나의 단점은 찾아가기 너무 어려운 곳에 있다는 것이네요

키루미의 큐트 포인트

우리는 대구의 곳스테이라는 곳에서 머물렀는데 우리가 들인 돈이 적은 돈이 아니었는데도 그 값을 톡톡히했다 솔직히 싸다고 느껴질 정도였다 테라스 안 풀에서 피로도 풀고 샴페인도 마시고 방에서도 여유롭게 푹 쉬었다

 

육회비빔밥이랑 모듬전 시켜서 이틀 내내 배가 터지도록 먹었다 육회비빔밥 처음 먹어 본 거였는데 생각보다 취향에 맞았는지 아직도 아른거림

 

밥 먹으러 가서 마주친 고양이

이 집은 못 하는 게 없더라고요 브런치도 너무 맛있었음

사람들 얼굴이 너무 많이 나와서 결혼식 사진은 생략했지만 식은 아름다웠고 아무튼 엄청나게 울었다 여기는 끝나고 키루미랑 같이 들른 카페인데 토마토 빙수가 맛있었다

 

래러는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나한테 래러는 큰언니처럼 여겨지는 사람이어서 감회가 남달랐다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할 것 같은 기분을 느끼고 있을 때면 래러는 어떻게 알아차렸는지도 모르게 불쑥 찾아와 나를 위로해주곤 했다 덕분에 울어야 하는 날에는 울 수 있었다 래러가 새로운 가족을 만나게 되어 정말 정말 기쁘고 세상에서 가장 큰 축복을 보내고 싶다 남편분과 함께하는 매일이 행복으로 가득하길

커피까지 맛있을 필요는 없잖아요 스콘까지 맛있을 필요 없잖아요

 

아무튼 숙소를 떠나 동대구역에서 키루미를 서울로 보내주었다

 

캐리어 보관한다고 조금 고생을 하다가 끝끝내 사라를 만났는데 오랜만에 보는 거라 기뻤다 사라가 맛있는 카레를 사줬는데 특히 카츠라고 할지 고기튀김이 무척 야들야들 맛있었다

백금당에 가서 해가 다 질 때까지 둘이 수다를 떨었다 사라는 이전에 나를 서운하게 만들어서 미안하다고 사과했고 나는 아닌 척했지만 꽤 속상했기 때문에 그 사과가 무척 고마웠다

 

중간중간에 어처구니 없는 대화를 하면서 우리는 같이 울었다 언제나 해주고 싶었던 말을 어찌저찌 전하려 애썼다 그 말에 우는 사라 때문에 내가 더 울컥해서 감추느라 고생했다 어쩌면 나도 조금은 솔직해졌는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사라에게 시집을 선물 받았다 나도 이 편지를 트렁크에 잘 담아서 여기까지 가져왔다

 

나는 매번 대구에 올 때면 사라를 꼭 만나기 때문에 사라를 만나야만 대구에 온 목적을 이룬 것 같은 기분이 된다 헤어짐은 언제나 아쉽다 

 

저녁에 창원으로 넘어와서 이틀을 보냈다 아빠는 또 사과를 했다 점점 더 내가 바라는 사과에 가까워지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게 무척 애틋했다

 

아빠와 했던 겉으로만 도는 대화들이 요즘은 오히려 속을 울리곤 한다 비어있는 말이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솔직하려 애쓴 말이기 때문일 것이다 속에 마음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걸 떠올리면 금방 눈물이 차오른다

아주 오랜만에 가벼운 마음으로 창원을 떠나왔다

열차에는 언제나 시집이 함께

 

편지처럼 전해진 시집의 표지에는 아마도 사라의 향이 남아있다 내 정수리를 토닥여주던 그 손가락이 완전히 펼쳐지지 않은 이 표지도 수 없이 넘겼을 것이다 종이에 물든 향은 사라가 남기고 간 마음일지도 

 

시집을 사면 표지를 책등까지 전부 펼치며 인사한다 나는 사라에게 오래 머물렀던 시집에도 같은 인사를 건넸다 7년 전 쯤 사라가 구매해 읽었다는 이 책은 이제 내 책장에 머무르게 된다 5년 전에 이 시집을 처음 사서 마르고 닳도록 읽었다는 사샤는 돌고 돌아 나에게로 이 시집이 왔다는 사실이 운명 같다고 했다 나도 그랬다 같은 책이 돌고 돈 것도 아닌데 운명 같았다 운명이란 게 원래 그런 거 아니겠니 별 것도 없으면서 우연이 아니라고 여기고 싶은 마음이 들면 그건 운명일 수 밖에 없는 거야